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공동대표 송인수・윤지희입니다. 선생님, 오늘 모처럼 기뻐서 흥분해도 될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 소식을 전하고 선생님께 앞으로 더 기쁜 소식 한가지를 위해 선생님도 선뜻 힘내실 두 가지 요청을 알려 드리려고 편지를 썼어요. 한번 읽어 보세요.

드디어 어제(11월 12일, 화) 정부가 우리의 제안을 받아 특권 대물림 교육 지표 조사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두 달 전, 조국 전 장관의 자녀 교육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우리가 ‘특권 대물림 교육 체제 중단’ 운동을 전개했지요. 그때 입시 공정성을 넘어 특권 대물림 교육 체제를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를 5-6가지로 정리해 발표했습니다. ▲자사고·외고 등의 일반고 전환, ▲학종의 비교과 요소 삭제, ▲특권 대물림 교육 실태를 확인하는 지표 법제화,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 ▲수직적 대학서열체제를 위한 국민 공론화 요구 등이었습니다.

그중 문제를 풀어가는 첫 단추로 우리는 정부에 특권 대물림 교육 기준을 잡아 이를 지표화해서 조사한 후 실상을 발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일단 지표가 만들어지고 지표 개선을 위한 조치를 정부와 대학 등이 매년 세우도록 하고 결과를 관리한다면 특권 대물림 교육 실태를 상당 부분 바로잡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회견과 토론회 등을 통해 이를 제안했는데, 드디어 어제 교육부가 특권대물림 교육 지표를 개발, 조사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참 잘된 일이에요.


                      
                                 ▲ <한겨레신문 11월 12일자 1면>
                                     
거기에 우리가 실로 오랫동안 주장해온 외고·자사고의 일반고 전환도 2025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발표를 교육부가 이미 하였지요. 수시 학종 비교과 삭제 또한 실현 가능성이 99%입니다. 그러면 자소서, 경시대회 수상 실적, 자율동아리 등 부모 배경에 영향받는 요소들이 다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모든 공약이 무너져 절망했던 세월이 1년 전이었는데, 역사가 뒤집어져 새로운 세상의 꿈을 다시 이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나 기쁜 일인지요.

이제 남은 과제는 출신학교 차별 금지와 대학서열체제 국민공론화입니다. 대학서열체제 극복은 단시일에 될 일이 아니라 별도의 준비를 구상 중인데요. 나중에 설명 드릴게요. 이제 단기 과제로 남은 것은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입니다. 그것도 저희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 공공기관에서는 이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으니, 민간기업에 이를 확대 적용하는 일만 남은 셈입니다.

그런데 민간 기업으로의 확대를 어떻게 요구할까 고민하던 중에 무릎을 탁 칠만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작년 11월에 한국산업인력공단이 한양대학교 산학연구단에 의뢰하여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 성과 실태조사 및 성과분석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이 보고서를 보니, 놀랍게도 블라인드 채용 후 명문대 출신 신입사원은 줄고, 지방대 출신 신입사원은 늘었으며, 또한 출신대학의 수도 다양해졌습니다. 또한 조기 퇴직자 감소, 조직 충성심이 강화되는 등, 기업에도 이익이 되는 결과가 나왔더군요. “야, 이 좋은 결과를 사회적으로 알려서 민간 기업에도 확대 적용하도록 설득하자” 그렇게 꾀를 낸 것입니다.

이 토론회는 이 법이 계류 중인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설훈 의원 등이 주관합니다. 수많은 의원들이 거절했는데, 설훈 의원은 함께 토론회하자고 하는 저희의 제안에 단박에 응하며 연말 좀체로 구하기 어려운 토론회장을 구했습니다. 원래 100명 들어가는 넓은 계단식 홀을 얻었는데 저걸 어떻게 다 채우나 싶어서, 소심하게도 70명이 들어가는 간담회장으로 가까스로 축소했어요. 그래도 결코 좁은 공간이 아니랍니다. 상근자들이 20명 자리는 채울 수 있지만 나머지 자리는 시민들께서 채워야하니까요. 11월 19일 화요일 오전 10시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의장입니다. 선생님, 오실 수 있겠지요?

저희가 수시로 국회에서 토론회를 개최하니 이게 쉬운 일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어떤 국회의원이든 그 의제를 받아줘야 국회에서 토론회를 할 수 있고, 때에 맞춰 장소를 구할 수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나아가 토론회 개최 성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시민이 이 의제에 관심이 뜨겁다는 것을 국회에 알리는 일입니다. 그러니 저희들이 국회 토론회를 열 때마다 참석 요청을 드리는데, 일반 시민들이 국회에서 열리는 토론회장까지 찾아오기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바쁜 일상에 시간 내시기도 어렵고 힘들지요. 그런데 선생님. 만일 대한민국 국회가 우리에게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제정해 줄게, 대신 당신들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서 올 수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본다면 뭐라 대답하시겠어요? 아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요. 그뿐이겠습니까? 다시 걸어서 부산으로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 이상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용감하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이 입시경쟁을 종식시키는 전쟁을 끝장내겠다고 나선 군사들이요 독립군들입니다. 까짓것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뭐가 고달프겠습니까? 우리들은 자주 아이들에게 ‘노력하지 않고 얻는 열매는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물며 국회에서 법 제정하는 일이 거저 얻어질 수는 없겠지요. 정치는 여론이 보이지 않는데 움직이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하니 힘들고 고단하다하여 이를 멈춘다면 그 어떤 세상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이건 수도권 분들에게만 요청합니다. 토론회 이후 일주일 뒤인 11월 26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에는 국회 앞에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서명용지를 전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6년 전 비오는 날 선행교육 규제법 제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2만명 정도의 서명자 명단이 담긴 박스를 의원실 숫자만큼 준비해서 트럭에 실어 국회에 내려놓고 돌리던 시절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그 일 이후 선행교육 규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그때 그 일을 한번 더 하시는 것입니다.

4년간 약 1만5천여 명의 시민들이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에 동참해 주셨어요. 이 서명용지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의원들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수도권 지역에 사신다면 국회의원실을 들러 서명 용지를 전달하고 사진도 찍으며 우리의 열망을 표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과정이 의외로 짜릿하고 즐겁습니다. 참, 수도권 이외 지역에 계시는 분도 참석하시겠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참 기쁜 일이 될 것이에요.


      ▲ 2013년4월 25일 선행교육규제법 촉구 기자회견, 2만명 서명지 국회 전달식


편지를 맺겠습니다. 2012년 입시 사교육 제로 7대 공약 운동을 전개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2022년에 찾아올 수 있도록 힘쓰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작년에는 그 길이 다 끊겨지는 듯해서 낙심을 하고 광화문 광장에 나와 늦가을 가슴 속의 슬픔을 쏟아 놓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공약을 되찾자”고 외친 후 1년이 채 되지 않아 잃어버린 것을 되찾을 놀라운 기적이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이 변화가 너무도 놀라워 상서롭기까지 합니다. 앞으로 3년 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희생과 댓가가 따르더라도 끝까지 가보려 합니다.  

아이들 생명을 살리는 전쟁에서 정치인들이 주저할 때 그들이 물러서지 않게 뒤를 든든히 지키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때로 정치인들이 나서지 못할 때, 안전과 이익을 포기하고 전쟁의 맨 앞에서 길을 열어내는 군인도 필요합니다. 누가 그 사람, 그 군인이 될 것인가, 물어볼 때, 저희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들고 자원하기로 11년 전 결심을 했습니다. 그 마음이 어찌 저희들만이겠습니까? 선생님 역시 부모로, 교사로, 시민으로, 또 출신학교 차별 금지법 서명자로 저희들과 늘 함께 해 오셨습니다. 싸움이 맹렬하다는 것은 그만큼 끝날 때가 가까웠다는 증거입니다. 함께 용기를 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19년 11월 13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윤지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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