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송인수 윤지희입니다. 요즘 우리가 추구해왔던 운동의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가는 과정 가운데 있어서 저희들도 참 신기하고 기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선생님들께 한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려 드리기 위해 편지를 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 대표들은 2020년 2월로 대표로서의 임기가 끝납니다. 이 운동을 12년 동안 책임져 온 상황인데요. 총회를 2달가량 앞둔 지금, 연임을 할 것인가 실로 오랜 동안 고심을 하다가 더 이상 연임을 하지 않고 새로운 공동 대표들이 이 운동을 끌고 가도록 해야 하겠고 우리는 단체의 미션 실행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겠다 판단해서 오늘 선생님께 관련 소식을 담은 편지를 드립니다. 아마 무슨 소리인가 깜짝 놀라실 텐데요. 자초지종을 말씀드립니다.

저희들이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작년부터입니다.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과 현 민주당 체제 속에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 공약이 실현되지 않고 교육개혁이 후퇴하는 것을 보고 저희는 크게 좌절했습니다. 여기에 교육감들이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는 전선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물러서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와 행정이 약속을 저버리니, 국민들의 뜻이 흩어지고 서로가 대결하며 길을 잃고 좌절하게 되었고 우리도 고민이 깊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시민운동을 해도 정치가 저렇게 시민의 열망을 외면하고,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버리면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때 우리 앞에 놓인 고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위해 일을 한다고 하자, 또 다시 대안을 공약 형태로 정리해서 정치권에 수용을 촉구하고 좋은 공약을 약속한 후보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공약평가운동을 한다고 치자, 그렇게 해서 정치가 우리 제안을 수용한다고 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들이 권력을 잡은 후 이번과 같이 다시 약속을 뒤집으면 우리는 또 다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런 번복은 지난 2018년에 경험했는데 그 과정을 반복한다 할 때, 어찌할 것인가? 누군가가 우리에게 “그대들은 어리석다, 그렇게 정치/교육행정에 당했으면서 그들을 다시 믿다니? 그 세월 동안 정치에 의존하지 않고 영향을 끼칠 다른 토양을 만들지 않고 왜 어리석은 일을 반복했는가?”

그렇게 비판한다면 우리는 유구무언일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반복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길을 찾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치가들 및 교육 행정가들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접고, 그동안 우리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성 안에서 전쟁을 해왔다면 대신 이제 성문을 열고 바깥 벌판으로 나가서 싸워야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찾아온 것입니다. 물론 성 안 싸움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을 지키는 더 큰 싸움을 위해 성 바깥으로 나왔는데 돌아보니 성이 불타고 무너지면 바깥 싸움을 제대로 싸울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마찬가지로, 성 바깥의 싸움 없이 성안의 싸움만으로는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 바깥의 싸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평범한 민심을 바꾸는 일입니다. 정치가 어떤 퇴행적 결정을 했다 해도 그것은 정치만의 판단이 아니라 민심의 흐름을 의식한 결정일 것입니다. 이번 수능 정시 확대 결정도 정부가 이를 지지하는 일반 민심의 표를 얻기 위한 결과였지요. 물론 우리 역시 그동안 뜻을 같이 하는 민심과 일해 왔습니다. 입시 경쟁을 이대로 방치하지 않고 바꿔내려는 ‘깨어있는 민심’ 말이지요. 그러나 더 큰 흐름의 민심은 이 입시 경쟁 체제를 바꿀 꿈을 갖지 못한 채 오랜 동안 현실에 맞추어 자식의 생존만 집중해왔으며 그 흐름이 정치에 영향을 끼쳐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큰 민심을 이대로 두면 앞으로도 변화를 위한 고개에서 번번이 옳은 방향으로 가길 주저하는 정치에 실망할 것입니다. 그 민심을 바꿀 더 깊고 근원적인 길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깊고 근원적인 길은 현재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역량만으로는 힘겹습니다. 지금 감당해야할 허다한 일도 많은데 일반 대중들을 설득할 더 근본적인 길을 간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외에 또 다른 운동을 인큐베이팅해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파트너로서 일하게 하자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위해서도 이롭습니다. 지금까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큰 나무 하나를 키우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칠 때 하나의 나무로만 버틸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나무와 나무가 서로를 지탱해 줄 큰 숲이 있어야 서로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민심을 움직이기 위해서 하나의 운동이 아니라 여러 보완적인 새로운 운동이 필요합니다. 국민들과 단체들을 묶어내어 정치도 어찌하지 못할 민심의 대세를 만들어가는 교육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말입니다. 이를 위해 단체 내 기존 조직 외에 별도의 ‘자회사’(예: ‘교육의 봄’)를 만들어 그 기구를 통해 바깥과 연대하거나 기존 조직이 감당하지 못했던 일들을 수행하는 것이지요. 그 운동을 내부에서 시작하나 사회적으로 더 큰 요청이 있을 때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바깥으로 나가 서로 협력하는 것도 가능할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뜻이 있다면, ‘좁은 영역’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머물지 않고 이렇게 더 넓은 영역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이룰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직 무엇 하나 결정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 안에 있으면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성문을 열고 나가서 벌판 속에서 고민해야하겠다 생각했습니다. 잘 될 것인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새로운 싸움을 감당할 몫이 누군가에게 있을 텐데, 우리 두 대표들은 아니다, 그렇게 피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변화라는 차원에서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이유는 조직 내부적인 상황과 관련됩니다. 저희 대표들이 내년 2월까지 하면 12년의 대표직을 책임지게 되는 셈입니다. 저희들이 창립 때 가졌던 목표가 아직 달성되지 않았고 여전히 그 목표를 향한 의지가 꺾이지 않았지만, 대표직을 유지하는 것만이 우리 조직에 도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상근자들 상당수는 5년에서 10년에 이르기까지 장기 근속한 활동가들이 다수이고 이들의 역량이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는데, 저희들이 앞으로도 계속 조직을 이끈다면 이들의 자발성과 능동성이 꽃을 피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흩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가서 저희들이 노쇠하고 다음을 맡길 젊은 사람들은 남아있지 않다면 조직은 그야말로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젊고 유능한 상근자들이 많은 지금, 이들이 집단지성을 통해 활력 있는 운동을 만들도록 우리가 다른 자리에서 이들을 돕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좁은 의미’로 규정한 지금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흔들림 없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두가지 요소가 필요한데, 그 첫 번째 요소는 누가 대표가 되든 단체의 뜻이 흔들림 없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미션과 핵심 가치를 세우는 작업, 향후 10년의 활동을 계획하는 10년 플랜 위원회 활동에 지난 1년간 집중했고, 세 차례 시민 경청회를 열고 시민들과 회원들의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치열한 논쟁과 고민, 분석의 과정을 거쳐 이제 완성을 해서 총회에 승인을 받고자 합니다. 그리고 총회의 승인을 얻기 전, 선생님께 이 편지를 통해서 10년 플랜 내용을 쉽게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내용을 보시면 우리가 하고자 하는 10년의 미래에 선생님도 크게 반가워하실 것입니다. 한번 아래 영상을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요소로 새로운 공동 대표 리더십을 세우는 일입니다.이 일은 실로 매우 어려운 과제이었습니다. 워낙 우리의 운동이 무겁고 거대한 과제를 수행해왔던 터라 누구도 이 운동의 대표직을 탐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바깥에서 유능한 사람을 데려오는 방안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유능한 그가 대표로 들어와서 그 단체의 뜻을 비틀어 유능함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내부에서 세우기로 했습니다. 대표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는 것도 지양하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유능해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한 사람의 탁월한 리더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기에, 우리 창립자들도 두 사람의 공동 리더십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실로 오랜 동안 고심하면서 새로운 리더십을 찾다가 마침내 적임 후보 둘을 찾았습니다. 그 둘은 정지현, 홍민정 선생님입니다. 두 분은 우리 단체 상근 활동가로서 내년에 30 후반의 여성 리더들이니 저희들과 연령 차이가 거의 20년 정도 납니다. 그러니까 운동의 연령이 한 20년 확 젊어지는 것이지요. 먼저 정지현 후보자는 우리 단체의 기획지원실장으로서 단체의 뜻을 잘 이해하고 심지가 견고하고 아주 탁월한 리더입니다. 그를 우리 단체가 품고 있다는 것은 큰 자랑입니다. 홍민정 후보자는 상임 변호사로서 정책업무를 총괄하는 국장을 겸임하고 있는데, 아직 이 분을 모르는 회원들이 많으시겠지만, 우리 대표들과는 달리 젊은 에너지와 감각, 즐거움이 충만한 사람이라 그가 있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이 두 사람은 각각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상호 신뢰와 존중심도 깊은 관계입니다.



우리는 이분들에게 우리 다음을 책임질 의사가 없는지 묻고 설득하는 과정을 여러 달 거쳤습니다. 더 늦어지면 안 될 듯해서 지난 2019년 2월 13일, 이들과 함께 찻집에서 대화를 하면서 최종 의사를 확인했더니 어렵사리 대표 후보직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들이 마음고생을 크게 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단체 대표직은 영광스럽고 해볼 만한 직이 아니라 고생스럽고 비판을 많이 받는 부담스러운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운동이 붙든 과제에 비해 자신들은 부족하고 연약하다는 걱정도 했지만, 그러나 도망가지는 말아야하겠구나, 그런 각오를 다져왔습니다. 아마 우리가 대표직 제안을 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공부나 새로운 시민운동을 돕는 등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을 버리고 힘든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이 일단 이분들을 후보로 이사회에 건의했고 이사회가 검토해서 타당하다고 판단했으므로 내년 2월 회원 총회에 최종 후보로 올려서 회원들의 판단을 받고자 합니다. 그 판단을 위한 기간이 2개월 안팎 남았습니다만, 지금 저희들이 이 뜻을 이 정도 시점에는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아서 오늘 편지를 드립니다.

“우리 대표들이 지금 자리를 내려놓을 때 위기는 없을까? 이들이 잘 할 것인가?” 그 질문 앞에 정직하게 대답해 봅니다. 우리 현 대표들에게 있는 것이 그분들에게는 부족할 경우도 있겠지만, 이들은 우리에게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살뜰하고 유쾌하게 관계를 맺는 힘, 진지함으로 담을 수 없는 즐거움과 흥, 예리한 논쟁과 선긋기로 경계심을 갖던 주변 사람들도 뭔가 신나는 일이 생기는 것 같은 마음에 흩어지지 않고 다시 모이게 하는 여유 같은 것이 이분들에게 있습니다. 우리 두 대표를 따라 하면서 조직을 이어받는 것이 아니며, 그들의 단점을 고쳐서 장점으로 바꿔야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는 장점으로 일하는 것이며, 단점은 최소화할 뿐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30대 젊은 여성 리더들이 만들어 가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창업자인 저희들이 가진 진지함과 무거움을 넘어서는 새로운 활력과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져줄 것입니다.

그분들이 이 단체를 책임지는 기회를 갖는다 할 때, 부족한 부분은 이사회나 회원들이 최선을 다해 보완해야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회가 보다 실질적이고 책임지는 기구로 발전되도록 내부를 개편할 예정이며, 다른 한편으로 회원들의 역량이 이 단체를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회원 참여형 운동과 기구를 폭발적으로 만들어낼 예정입니다. 저희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속에 일종의 ‘자회사’를 만들어서 우리 운동의 생태계가 건강하게 뻗어가 우리의 최종 미션을 달성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이사회에 남아서 더 책임감 있게 역할을 감당할 것입니다. 손봉호 이사장님은 여러 날 전부터 두 대표가 실무를 그만 두면 둘 중 하나는 이사장이 되어 우리 법인을 책임져야한다고 강조하셨고, 지난 임시 이사회를 통해 그 제안을 이사회에서 확정지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2월 총회 때 이사장 후임도 저희 두 대표 중 한 사람으로 확정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행여 저희들이 이 운동을 그만 두는 것은 아닌지 오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들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 은퇴는 없습니다. 저희는 결코 이 운동의 미션을 버리지 않을 것이며, 단체 내 이사회나 또 안팎의 새로운 운동을 통해 국민들과 정치에 영향을 미칠 더 매력적이고 풍성한 기반을 구축하는 일에 매진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선생님께서, “아,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대표 두 사람까지 나서서 4명이 이 운동을 이끌어가는 것이구나?” 그런 마음에 든든해하실 것입니다. 설혹 우리의 의사를 넘어 불가피하게 다른 선택을 할지라도, 그 길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저 사람들이 저렇게 싸우는데 우리도 비겁하게 물러서지 말자”, 그런 생각이 드실 길이 되고야 말 것입니다.

여하튼, 우리는 지금 ‘사교육 문제와 입시 경쟁’의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마련 중에 있습니다만, 지금 저희가 생각하는 새로운 길은 정리가 되는 대로 선생님께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후원자이신 선생님께 저희들의 거취와 새 대표 후보에 대해서 설명 드렸습니다만, 앞으로 일정을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 분의 후보자들을 총회에 후보로 추천할 지에 대해서 일단 최종 검증의 과정은 마쳤고 12월 이사회를 통해 총회 추천을 결정했으며, 내년 2월 정기 총회가 차기 공동대표를 최종 결정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다음 대표들이 세워지면 이사회도 변모를 하고자 합니다. 이사들이 지금까지야 창립자 대표들을 믿고 울타리 역할을 해주는 일로 충분했지만, 앞으로는 새로운 젊은 대표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이사회로 변모되어야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이사장을 선출하는 것을 넘어, 더 좋으신 이사들을 추가적으로 영입해서 입시 경쟁과 사교육고통에서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힘쓸 것입니다.

긴 편지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저희들의 이런 결정에 대해서 의견이 있으시거나 무엇보다도 영상으로 설명 드린 10년 플랜의 꿈과 리더십 교체와 새로운 대표 후보자들에 대해서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입니다. 아래 의견을 남길 배너를 클릭하셔서 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19. 12. 24.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송인수 윤지희 올림

[10년 플랜 해설 영상]